한양도성 유적지 광희문
광희문 (光喜門)
한양도성 순성길
한양도성의 광희문은 1396년 한양 도성을 창건할 때 조선시대 한양의 4 대문 사이에 위치한 4 소문 중 동남 방향에 있는 성문으로, 장충단에서 한강 사이의 남소문이 없어진 뒤 북쪽의 수구문을 일컬어 광희문(光熙門)이라 불렀습니다. 또한 서소문과 함께 한양 도성안에서 사망한 시신들을 도성밖으로 나가는 문으로 사용하여, 시구문이라고도 불렀다고 합니다.
광희문은 동쪽의 흥인지문인 동대문과 남쪽의 숭례문인 남대문 사이의, 도성 동남쪽에 있는 문으로, 태조 5년인 1396년에 도성을 쌓을 때 창건되었으며, 숙종 37년인 1711년에 고쳐 쌓은 문입니다. 1719년에는 석출 위에 문루를 짓고, 광희문(光熙門)이라는 현판이 걸렸습니다.
조선시대 촌주교 박해시기 서울과 수원, 용인 등 인근지역의 천주교 신자들이 도성 안으로 끌려왔고, 가혹한 고문 속에서 배교를 강요당하다가 끝나 이를 거부함으로써 순교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도성 안에서 참수당한 순교자들의 시신들은 짐짝만도 못한 취급을 당하며, 광희문 밖으로 내다 버려졌으니, 실로 끔찍한 생(生)과 사(死)의 갈림길 어있습니다.
광희문 밖은 단순히 조선인의 죄수와 무연고자들의 시신이 방치되었던 곳이 아닌 순교자들의 주검과 피를 통해 성화된 중요한 성지라 하겠습니다.
광희문은 6.25 전쟁으로 문루와 성문 위 여장이 파괴되었다가 1976년 고증을 거쳐 복원하였습니다. 복원과정에서 도로를 개통하면서 원래의 위치에서 약간 남쪽으로 옮겨졌습니다. 광희문과 함께 대표적인 시구문으로는 남한산성의 수구문이 있습니다.
광희문을 물줄기가 나가는 수구문(水口門), 도성안 시신이 나가는 문으로, 시구문(屍口門)으로 불리는데, 이는 도성 안에서 죽은 시신이 도성밖으로 나가는 문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불리는데, 광희문은 6.25 전쟁을 거치면서 석축으로 된 기단부만이 남아있었던 것을, 1975년 광희문을 복원할때, 홍예석축을 해체하고 남쪽으로 약 15m 옮겨 , 주변을 녹지 화하고 문루를 새로 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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