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일대 개발전 판자촌모습

 6070 시절 청계천 무허가 판자촌

조선시대 때부터 동대문 오간수문 일대는 거지들이 모여 살던 공간이었다, 해방 후 까지도 동대문에서 청계천 일대에는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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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자촌
일제강점기가 지나고, 해방 이후 6.25 동란을 거치면서 북에서 월남한 월남민 들과 남에서 상경한 어려운 사람들이 이 일대 청계천변에 오두막 판잣집을 짓고 살게 되었다. 

무허가판자촌-재현한-모습
청계천변 판자촌

초억속-판자촌
청계천변 판자촌
몰려드는 어려운 사람들이 늘어나지 이 일대는 주거 지역인 동시에 큰 시장이자 산업지역 이기도 했다.

힘들었던-시기
청계천 판자촌
천변 사람들은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오는 물품들을 사고팔고, 폐품을 재활용하여 새 상품을 만들어내기도 하였다. 해방과 전쟁을 겪으며, 산업화되는 과정에서 청계천변 시골 사람들은 서울사람으로 바뀌고, 농민이 노동자로 바뀌는 전이 지대였다.
 

삶의-터전-설명
삶의 터전이, 청계천변 판자촌
이 일대 시장의 상점주와 종업원은 대부분 천변에 사는 사람들이었으며, 불법 물건 가리지 않고 모든 물품이 거래되는 도깨비시장 형성되었다. 천변의 시장은 지금의 평화시장, 공기계 상가, 황학동 벼룩시장 등의 기원이 되었다.

청계천-개발-설명
도시개발의 걸림돌이 된 판자촌
청계천변 50년대, 60년대 서울을 대표하는 슬럼이었다. 서울에서 가장 부끄러운 장소가 되어 갔다. 청계천 복개와, 천변 판자촌 철거는 미를 수 없는 시대적 과제로 인식되기 시작, 수많은  어려움 속에 많은 시행착오와 함께 개발되면서, 오늘의 청계천이 탄생하게 되었다.

 
판자촌-체험
판자촌 체험
청게천 7가 일대 그시절 판자촌 일부를 재현해 체험장소로 공개하고 있다.

 

 


재현해놓은-청계천변-판자촌
3070시잘 판자촌

6070시절-모습
판자촌 풍경

6070시절-판자촌-여러풍경
판자촌 풍경

사전연락호-내부관람-허용


내부 공간이 협소해 코로나19로 사전 연락 후 제한적 체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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