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공원 독립문과 영은문 주초
독립문과 영은문 주초
迎恩門 柱礎, 獨立門
서대문 독립공원
서대문독립공원 초입에 우뚝 세워져 있는 영은문 주초(迎恩門 柱礎)와 독립문(獨立門), 독립문은 사적 제32호, 영은문 주초는 사적 제33호로 지정되어 있는 문화재입니다. 1979년 도시 개발과정에서 원래 있던 자리에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져 오늘에 일고 있습니다.
사적 제32호
독립문은 우리 겨레의 독립정신을 영원히 상징하는 것으로, 독립문은 자주독립의 의지를 다짐하기 위하여, 중국의 사신을 영접하던 영은문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세운 것입니다. 독립문은 우리 민족의 자발적인 참여 속에서 서재필이 조직한 돌립협회가 모금을 주도하고 고종황제의 승인을 얻어, 화강암으로 쌓은 높이 14.28m, 너비 11.48m로, 1897년 11월 완공해 놓은 석조물입니다.
경성부사(京城府史)에 따르면 러시아인 인 사바틴이 설계하고, 조선인 심의석이 공사를 하였습니다. 화강암을 쌓아 만든 독립문의 중앙에는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이 있고, 왼쪽 내부에는 옥상으로 올라가는 돌계단이 있습니다.
옥상에는 돌난간을 들렀으며 홍예문의 가운데 이맛돌에는 대한제국 황실을 상징하는 오얏꽃 무늬를 새겼습니다, 문의 앞면과 뒷면에 있는 현판석에는 각각 한글과 한자로 "독립문"을 새기고 그 좌우에는 태극기를 새겨 넣었습니다.
독립문은 본래는 현재의 위치에서 남동쪽으로 70m 떨어진 길 가운데에 있었는데, 1979년 성산대로 를 만들면서 이곳으로 옮겨 놓있습니다. 독립문의 "독립"은 식민 통치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홀로 설 수 있는 주권 국가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합니다. 독립문은 주권을 위협하는 열강들 사이에서 주권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를 세계에 알리려는 모든 국민들의 노력이 담긴 역사적 석조물입니다.
사적 제33호
영은문 주초는 영빈관급 건물로, 중국의 사신을 접대하던 모화관의 정문 영은문을 받치던 돌기둥이었습니다. 1895년 사대 외교의 상징인 영은문(迎恩門)을 철거하면서 기둥을 받치고 있던 돌만 남게 되었습니다. 1979년 성산대로 를 만들 때 독립문과 함께 이곳으로 옮겨 놓았습니다.
모화관은 조선시대 태종 7년인 1407년에 모화루(慕華樓)라는 이름으로 처음 세웠습니다. 세종 12년인 1430년에 모화관(慕華館)으로 바꾸고, 앞에 홍살문(紅箭門)을 세웠으며, 중종 32년인 1537년에는 홍살문보다 격식을 갖춘 영조문(迎詔門)을 만들고, 그로부터 3년 뒤 영은문(迎恩門)으로 하였습니다.
철거 전 영은문(迎恩門)
철거 전 영은문(迎恩門)의 모습이 사진으로 남아있는데, 두 개의 긴 주춧돌 위에 원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얹었으며 지붕은 푸른색 기와로 덮고 각종 동물모양을 조각한 잡상을 배치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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