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공원에 있는 미 군용 수송기 한대
여의도(汝矣島) 공원 여의도 비행장
조선시대 양화도, 나의주 등으로 불리던 한강의 작은 섬 여의도에 1916년 여기에 간이 비행장을 건설하면서, 섬의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하였습니다. 해방 후에는 미군이 사용기도 하였으며, 1968년 서울시에서 윤중제(輪中堤) 공시를 하면서, 상업, 금융, 주거지구로 발전하면서, 1970년대 한강개발과 함께, 서울대교, 1981년 원효대교가 완공되면서 여의도가 서울의 중심가로 발전을 했습니다.
여의도라는 이름은, 현재 국회의사당 이 들어서던 자리에 있던 양말산은 홍수에 잠길 때에도 머리를 살짝 내밀고 있어 "너의섬, 나의섬"으로 말장난처럼 부르던 것이 한자화되어 여의도(汝矣島)로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여의도 공원으로 변한 여의도 광장은, 여의도 비행장이던 이곳을, 1971년 9월 11만 4.300평에 달하는 넓은 공간에 5.16 광장이 들어섰습니다. 이때만 해도, 국군의 날 퍼레이드도 여기서 했고. 국풍 행사, 대통령 선거 유세, 종교행사는 물론이고, 100만 군중의 함성소리, 각종 대규모 시위도 이곳에서 일어났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여의도광장으로, 현재의 숲이 살아 숨 쉬고 있는 여의도공원으로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여의도 공원은 도심 속 자연생태공원으로 탈바꿈 한 역사가 있는 공원입니다. 이 여의도 공원에 수송기 한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여의도 공원 중앙에 수송기 한대가 서 있습니다.
여의도 공원에는 비행기 한대가 있습니다. 이 비행기는 광복군 비행기로, 2015년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C-47 수송기를 찾아내 당시 수송기가 착륙했던 지점에 "C-47 비행기 전시관"을 세웠습니다.
1945년 8월 18일 중국 싱나비행장에서는 미군 수속기 한대가 이륙을 했습니다. 미공군 수송기에는 미군 특공대 OSS와, 광복군 특공대(정진대)가 타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향한 곳은 바로 여의도 비행장(여의도 공원)이었습니다.
작전명은 독수리, 「광복군의 이름으로 조국에 진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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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11월 23일 김구주석을 포함하여 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이 미군수송기를 타고 귀국하여 당시 여의도 비행장이었던 이곳에서 첫발을 내딛는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광복된 해 1945년 당시에는 일제가 건설해 놓은 경성비행장이 있었습니다. 이곳에 광복 후 3일 만에 C-47수송기 한대가 내려앉았습니다. 활주로에 내려서자 중무장한 일본군들이 비행기를 둘러쌌습니다. 활주로에는 50여 대의 일본군 전투기 50여대와 탱트2대 등 긴장감이 도는 살벌한 분위기 였다고 합니다. 전쟁은 끝났지만 한국인을 두려워하는 일본군들은 무장을 강화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곳 여의도는 대한만국 공군 최초의 비행단이 위치했던 곳입니다. 대한민국 공군은 1949년 10월 1일 대통령령 제254호에 따라 조국의 하늘을 지키기 위해 1,600여 명의 병력과 경항공기 20여대로 창군되었으며, 이곳은 당시 대한민국 최초로 창설된 비행단 부지로서, 1971년도 까지 20여 년 동안 공군의 최전방기지로 운영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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