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로 지정되는 경주 분황사 당간지주

 경주 분황사 당간지주

국가지정 문화재 보물로 지정
자료출처/문화재청

경북 유형문화재로 그동안 지정되어 있었던 "경주 구황동 당간지주"를 "경주 분황사 당간지주"라는 이름으로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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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황사 당간지주/ 이미지 출처: 문화재청

경주 구황동 당간지주는 분황사 입구 남쪽과 황룡사 사이에 세워진 것으로, 고대 사찰 가람에서의 당간지주 배치와 분황사 가람의 규모와 배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보면 황룡사 것으로 보이는 파손된 당간지주는 분황사에서 활용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보인다. 


 

 

딩긴 지주는 당을 걸기 위한 단간을 고정하는 지지체로 통일신라 초기때 사찰 입구에 세워지기 시작한 조형물로, "경주 분황사 당간지주"는 일제강점기때 촬영 된 사진과 현재의 모습이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아 그동안 외적인 변화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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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 직전의  분황사 모전사 탑과, 분황사 당간 지주(일제 강점기)/이미지 출처:문화재청

현재 두 지주 사이에 세웠던 당간은 남아있지 않지만, 조용 기법과 양식이 같은 두 지주와 당간을 받쳤던 귀부형 간대석이 원위치로 보이는 곳에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있다. 귀부형의 간대석은 남아있는 통일신라 당간지주 중에서는 유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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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황사 당간지주/자료: 문화재청

경주 분황사는 경주시 구황동에 있는 사찰로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칠처가람 중의 하나로 선덕여왕 3년인 634년 용궁의 북쪽에 창건되었다고 한다, 당시 분황사는 황룡사와 함께 왕실 차원에서 건립되었으며, 선덕여왕을 비롯 여러 국왕과도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신라 선덕여왕은 643년 당나라에서 귀국한 자장(慈藏)을 분황사에 머물게 하였으며, 645년에는 자장(慈藏)의 요청으로 황룡사탑이 처음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창건된 이후 황룡사와 함께 중요 사찰로서 중앙 정부나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신라 불교 신앙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현재 분황사에는 모전석탑, 각종 석불, 당간지주, 팔각 우물, 비좌 등을 비롯하여 건물에 활용된 많은 석재와 기와 주각들이 남아있어 고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중에 분황사 입구 남쪽에 세워져 있는 당간지주는 신라시대 분황사 가람의 규모와 배치, 고대 사찰 가람 상에서 당간지주의 배치, 주변 사찰들과의 배치와 방위, 황룡사지는 입구 쪽에 파손되었지만 황룡사의 것으로 보이는 별도의 당간지주가 유존하고 있는 점, 현재의 분황사 가람의 규모가 상당히 축소된 상황이라는 점 등 다양한 측면을 고려할 때 분황사에서 활용하기 위하여 건립했을 것으로 보인다. 즉, 분황사 소속의 당간지주가  확실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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