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4대 세종대왕 업적

 세종대왕의 민본정치

King Seojong: Ruler for the People


제 4대 임금 세종(世宗) 대왕 (재위 기간 1418~ 1450)은 조선시대에 가장 훌륭한 업적을 남긴 임금이다. 그의 업적에는 백성을 근본으로 하는 민본(民本) 사상과 우리 풍토에 맞는 풍물을 만들겠다는 현실 인식이 담겨있다.

세종은 글을 쉽게 쓸 수 있도록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창제하고,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도록 측우기. 물시계, 해시계를 고안했다. 또한 우리나라에 맞는 역법서를 만들고 우리 풍토에 맞는 농벙을 수합했다. 그리고 여론을 조사하여 백성의 부담을 줄 일수 있는 조세정책도 시행하였다.

세종은 신분에 관게없이  인재를 등용하고 신권과 왕권의 조화를 중시했기 때문에 이러한 훌륭한 업적을 세울 수 있었다. 세종은 인사와 군사 분야에서는, 이조와 병조의 직계를 용인하고 나머지는 사하들에게 맡기는 의정부 서사제를 실시하여, 신하들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한 진정한 힘이 있는 임금이었다.

 

 

앙부일구

Hemispherical Sundial

백성과 함께 사용한 해시계

세종 16년 10월, 해시계 앙부일구를 백성이 많이 다니는 한양 종로의 현 광화문 우체국 부근인 혜정교와 종묘의 남쪽 거리에 설치하여 누구나 시간과 계절을 알 수 있도록 하였다.


해시계
해시계 알부일구 (오른쪽 휴대용 해시계)

오목한 숱이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어 앙부일구라 부른다. 솥 안에 뾰족한 영침의 그림자가 해가 떠서 질 때까지 원 내부의 가로선과 세로선에 놓이게 되는데 이 위치로 절기와 시간을 알 수 있다. 원 내부 가로선은 24절기를, 세로선은 시간을 표시한 것이다.

조선 전기의 조세 제도

Taxation Systrm in the Early Joseon Dynasty

조선 조세 제도

조선의 전기 조세제도는 조. 용. 조 방식이다, 조(租)는 토지에 부과하여 쌀과 콩을 부과하는 방식, 용(庸)은 성인 남자의 노동력을 징발하는 방식이며, 조(調)는 고을에 따라 특산물을 거두는 제도이다. 세종은 공평한 토지 정책 수립을 위해 1430년 5개월 동안 전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17만 2,806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찬성 57%가 나왔으나, 반대고 많았다는 이유에서 꾸준히 세법을 가다듬어 1444년에  토지 비옥도와 풍흉에 따라 구분하는 전분 6등제와  연분 9등제를 실시하였다. 

삼총통

화약 무기 개발

세종은 화약 무기를 개량하는데 관심이 많았다. 이 시기에 여러 총통을 새로 만들어 활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의 무기 삼총통

삼총통은 사정거리는 약 960m로 추정된다.  이와 같이 무기를 개량하여 4군과 6진을 설치하였다. 4군과 6진의 개척으로, 압록강과 두만강을 잇는 북쪽 국경선이 확정되었다.
 

저울추
Weight

저울 정비 및 보급

조선의 도량형

도량형을 정비하는 일은 국가를 통치하는 데 중요하다. 세종 때 새 저울을 만들어 보급하고 정비하였다. 세종 9년인 1427년 공조에서 제작한 이 저울추에 "근"과 "냥"이라는 무게 단위가 표시되어 있다. 1근 약641g, 은 16냥 이다.


장흥고, 인수부 분청사기

조. 용. 조 제도에 따라 각 지역에서는 특산물을 관청과 왕실에 납부를 하였는데, 15세기 중반까지 납품을 하였다.

공납용 자기
15세기 공납용 자기

지역과 관청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것이 그 예로, 지역적으로는 경주, 군위,  영천, 밀양 등 경산도가, 관청으로는 자흥고와 인수부가 많다. 그릇에 이름을 새긴 이유는 장흥고에서는, 다른 관청이 사용할 그릇을 나누어 주고, 행사가 끝난 뒤 다시 거둬들이는 일을 담당했는데, 반납 비율이 1/5이 안되기 때문이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그릇에 이름을 새기도록 명하였다.

을해자와 함께 쓴 한글 금속활자와, 능엄경언해

조선의 금속활자
한글 금속활자로 발행한 불경언해

세조가 번역하고 1461년 간경도감에서 간행하였다. 온전한 불교 경전 중 가장 먼 저 언해한 것으로, 15세기 국어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고 한다. 능엄경언해는 현재 30여 자 가 남아 있으며, 제작 연대를 알 수 있는 현존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이다.

국조보감
국조보감에 수록된 훈민정음 관련 기록

본받을 만한 역대 임금의 선정을 모아 편찬한 국조보감. 세종 편에 세종의 업적으로 훈민정음 창제 관령 내용을 수록했다.

훈민정음 창제
훈민정음을 창제하다.

계해년 겨울에 우리 전하께서 정음 28자를 창재하여 대략적으로 예의를 게재하여 이를 훈만정음이라 하였다. ~중략~ 쓰고 싶은 말을 표현하지 못할 것이 없고, 어디를 가던지 통하지 못할 것이 없다. 비록 바람소리, 학의 울음소리, 닭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 일지라도 모두 글로 적을 수가 있다.

용비어천가
세종 29년 종이에 목판 인쇄

목판 인쇄물
한글로 간행한 최초의 문헌

태조의 4대 조와, 태조, 태종까지 6대의 행적과 조선의 건국 과정 및 관련 설화 등을 담은 징편 서사시이다. 총 125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글로 지은 본문 뒤에 한문으로 주석을 달았다. 한글을 사용하여 처음으로 지은 글로, 15세기 언어와 문학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 세종의 면으로 간행했으며, 권지 등이 편찬에 참여하였다.

한글 창제
백성을 위해 한글을 만들다.

한글창제 원리
한글 창제 원리

세종은 1443년 한글을 창제하였다. 우리의 말이 중국과 다르다고 인식하고 우리에 맞는 문자를 만든 것이다. 한국은 획기적인 발명품이며, 세계 문자 중 만든 사람과 반포 시기, 찬제 원리를 알 수 있는 유일한 글자이다.

한글의 기본 자음인 ㄱ, ㄴ, ㅁ, ㅅ, ㅇ은 혀, 입술, 치아, 목구명 등 발음 기관의 모양을 본떠 만들었고, 기본 모음인 ., ㅡ, ㅣ는 각각 하늘, 땅, 사람의 모양을 기본으로 만든 것이다. 기본 자음과 모음에 획을 더하거나 글자를 포개어 다른 글자를 만드는 원리는 현대디지털 시대에 적합한 방식일 것이다.  세종시대는 많은 업적을 남기었으나 그중 가정 위대한 업적은 흔민정음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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