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병풍 감상

조선시대의 서화(書畵) 감상 ①    

조선 19~ 20세기 작품 종이에 먹, 지본 서화(紙本書畵)

박규수가 성리학을 집대성한 중국 남송의  주희의 글을 옮겨 쓴  병풍으로, 박규수는 박지원의 손자로 실학의 가풍을 이어받아 개화사상을 잉태하는 데 기교 역할을 하였다. 서화에도 뛰어난 솜씨를 발휘하였는데 이 병풍 글씨에서 신위 등이 추구한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서체에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취성정 병풍
취성정 병풍에 붙인 시

취성정은 남송 때 푸젠성 고정에 진 씨가 고쳐 세운 별장으로, 명칭은 그 후한 때의 명사 진식이 순숙을 찾아가자 하늘이 덕성이 모이는 천문현상이 일어났다는 고사에서 따 온 것이다. 주희는 진식과 순숙의 고사를 시로 읆어 취성정의 재건을 기념하였다. 제2~ 3폭 사이에 원문에서 빠진 부분이 있어 원래 2폭이 더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쟁좌이고
쟁좌이고 를 쓴병풍

윤용구(호는 석촌)는 고종 때의 문신으로 예조판서와 이조판서를 역임하였다. 을미사변 이후 벼슬을 내려놓고 은거하며 스스로 장위산인 이라 하였다. 한일 강제 합병 때  일본은 남작 작위를 수여하였으나 서양하고 서화에 매진하였다. 20세기에 들어서 서화기들은 협회를 결성하고, 전람회에 참여하며 근대적 미술가로 변모하였으나 윤용구는 마지막까지 전통적인 문인 서화가로 남았다.



 

 

이 병풍은 당나라 안진경의 쟁좌이고 구절을 뽑아 쓴 것으로 , 색색의 종이를 사용해 장식미를 갖추었다. 쟁좌이고 는 권력자에게 아첨하고 조정의 위계를 은 정양군왕 곽공에게 보낸 서신으로, 예법과 도리를 엄격히 지킬 것을 당부한 것이다. 제3, 4폭은 서로 위치가 바뀌었고 제6폭과 7폭 사이에 일부 구절이 빠져있어 원래 2폭이 더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조선 18~ 20세기 작품 비단에 색, 견본 채색(䅌本彩色)

 

작가미상 병풍
작가 미상으로 비단에 색 작품 

천자에게 조곡을 바치기 위해 늘어선 제후국의 사신들을 그린 병풍이다. 이러한 그림은 당나라 때부터 제국의 태평성대를 과시할 목적으로 제작되었다. 한국에서는 거의 다루지 않다가 18세기부터 병풍으로 제작되기 시작하였다. 오른쪽부터 제2폭에는 전각 위의 천자를 향해 흰 꿩과 코뿔소의 뿔, 산호 등을 바치려고 계단에 오르는 고깔 쓴 이민적 들리 묘사되어 있다.

그 아래의 월대와 계단에도 제후의 나라 사신들이 제각기 공물들을 받들고 늘어서 있다. 제5~8폭에는 청나라 복식인 마괘자와 나모 차림의 사신들도 등장하고 있다. 현실과 상상이 교묘하게 섞인 이미지로서, 조화롭고 태평한 세계에 대한 염원을 담은 것으로 보인다.


비단에 채색 병풍
작가 미상으로 비단에 색 작품

가상의 이상 도시를 만든 병풍으로, 도시의 상공업 활동과 유흥을 빼곡하게 담아내고 있다. 성문 안에 잘 정비된 대로와 패루가 이어지고, 갖가지 상점과 노점 공방들이 들어서 있다. 저택 안에는 가족의 생활과 가사노동, 놀이 장면이 나타난다. 하천 바닥에 쌓인 흙을 파내는 준천, 장원급제자의 삼일유가 행렬 등 조선 수도 한성의 풍속을 묘사하면서도 건축의 복식은 중국이 송~명대를 이상으로 삼아 그려냈다. 

건물에는 다양한 연등이 장대에 내걸려 있는데,  화면 아래쪽 객주에 걸린 태(太) 평(平) 글자 모양 연등은 이 작품의 주제가 태평한 세계임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18세기 후반 지식인들이 상공업으로 변화한 도시를 이상향으로 삼았음을 보여주는 수준 높은 병풍으로, 도화서 화원들이 합작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무신진찬도
무신진찬도
작가 미상으로 비단에 색 작품

1848년 헌종의 할머니 순원왕후의 육순과 헌종의 어머니 신정왕후의 망오(41세)를 경축한 행사 가운데 창경궁 통명전에서 열린 외진찬과 야진찬 장면을 그린 것이다. 외진찬 장면에는 포구락, 처용무등의 궁중 정재가 펼쳐지고 있다. 야진찬 장면에는 검무 등이 진행되고 있다. 

처마에 걸린 연등들이 잔치임을 알려주고 있다. 왕싱 여성들을 위한 잔치인 만큼 행사장 안쪽에 발을 드리워 남성과 공간을 분리하였으며, 악공과 외빈은 무대 바깥에 자리하고 있다. 행사의 이모저모를 섬세한 필치와 채색으로 묘사하였으며, 공간은 뒤로 갈수록 좁아지는 서양식 투시도법으로 나타 내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