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사회의 삶

풍요한 삷 빈곤한 삶

조선 후기 사회 

Prosperity and Poverty

조선 상품 화폐 경제의 발달로 18-19세기 한양은 상업도시의 면모를 갖추었다. 도시에 부는 세도 가문, 상인, 하급 관료들에게 집중되었으며, 이들이 새로운 도시 문화를 이끌어 같다. 상인과 하급 관료들은 향락적인 문화를 향유하였다. 당시에는 극소수에게만 성공과 부가 집중되던 불안정한 사회였다.

그래서 손쉬운 방법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도박이 상행하였다. 한양은 점점 화려해졌지만 가혹한 수탈로 백성의 생활은 점점 어려워져 같다.

도박을 경계한 정약용

요즘 유행하는 것은 바둑, 장기, 쌍륙, 투전, 골패, 윷놀이이다. 여러 가지 내기 놀이 중에서도 심보가 나빠지고 재산을 탕진하며, 가문과 친족이 근심하는 것으로 투전이 으뜸이고, 쌍륙과 골패가 그다음이다. 관리가 포탈하고, 뇌물 받는 것도 대부분 여기서 나오는 것이다.  정약용의 목민심서 중에서

이춘풍

도박으로 탕진한 이춘풍 

춘풍이 오입하여하는 일마다 방탕하고, 대대로 내려오는 물건(세전 지물)과, 굉장히 많은 돈(누만금)을 남용하여 없이할 제, 남북 촌 오입쟁이와 한 가지로 휩쓸려 다니면서 호강하여 주야로 노닐 적에, 모화관 활쏘기와 장원악 풍류하기, 산영에 바둑 두기, 장기, 쌍륙, 골패, 수투전, 육자배기, 동동이, 사시랑이, 엿 방망이 하기와, 이아 보며 돈 주기, 어른 보며 술대접하여, 고운 얼굴 말은 소리, 맛 좋은 일년주 며, 벙거짓 골 알구지탕, 너비핢니 갈비찜에, 일일장취 노닐 적에, 청루의 어여쁜 기생(청류 미색) 달려들어 수천 금을 시각이 없이하니, 천하 부자 석숭 인들, 그 무엇이 남을 손가, 티끌같이 없어지고, 진토같이 다 마른다.    -이춘풍 전-


조선시대 별감
별감
별감은 궁안의 잔심부름꾼이었다. 신분은 낮았으나, 궁중 행령에 참여하는 직업으로 차림은 화려하였다. 별감이 붉은 옷에 파란색 허리띠, 노란 초림을 착용했다. 사치스러운 생활을 한 별감은 조선 후기 유흥계의 주역이었다. 


도박과 단속

Rise of Gambling

도박단속

담배와 술 바둑과 투전이라면,

보통 사람들 중에 못하는 이가 없을 것이다.  유만주 「흠영」


재물로 도박하는 자는 장 80에 처하고

판 위에 흩어진 재물은 관청에 들이며.

도박판을 열어 장소를 제공한 사람도 같은 죄로 하되

현장에서 발각한 자만 검거하고

관직에 있는자는 한 등급을 더하여 처별 한다.   「재명률」


도박은 오랜 역사를 지니며 생산력이 높고 불확실한 사회에서 더욱 성행을 한다, 조선 후기에도 도박이 성행했다. 사기도박은 늘어나고, 도박장을 개설하여 고리로 이자를 챙기거나, 자릿세를 뜻는자들도 나타났다. 도박으로 패가망신하는 자가 많아지면서 도박을 금지했으나, 거리의 점포에서 도박 도구가 일산 용품으로 펼렸다.


풍요로운 삶

Life of Affluence

어른어른 빛나는 물건들 어느 하나 놀랍지 않은 것이 없구나. 깔개 몽고 것이오, 안석은 일본에서 왔네, 은주시대 청동기 골동품에 보배로 장식한 쟁반이며 서늘한 자리 상아로 엮었고 따뜻한 전방석 봉황을 수놓았네   이조원 「대고」


부유층의 삶

부유층은 여가 시간에 바둑, 장기, 투호, 활쏘기를 하며 심신을 단련했고, 향을 피우고 차를 마시며 서화를 즐기거나 문방구, 골동품, 서책, 분재, 수석을 수집 감상을 하였다. 특히 천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화려한 문방구를 선호했다.


빈곤한 삶

Life of Poverty

젖먹이 아이마저도 군적에 올려졌더라오. 집에 무엇이 남았나, 외양간에 누런 송아지 한 마리뿐이었소. 그놈 팔아 관가에 돈 바치고 나니 또 포흠이 남아 있더라오.  베필로 베 몇  필 만들어 모두 겨울 군복 만들라고 주었더니, 어이 한 자 한 치 베인들 남겨, 내 아랫도린들 가릴 수 있었겠소. 입고 먹을 것도 없으니 이떻게 이 한 해를 보낼는지.  홍양호 「유민원」


조선시대 빈곤

어느 시대나 가난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조선시대에도 가혹한 세금과 군역을 피하기 위해 노비가 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양반층이 토지를 계속 늘려가면서 토지를 잃고 소농작으로 전락한 하층 농민이 증가하였다. 터전을 상실한 사람은 한양으로 몰려들어 임노동자가 되었다.

소반. 그릇과 거창가

소반과 거창가

조선시대 상차림은 소반에 몇몇 찬과 커다람 밥그릇이 놓인다. 하루의 필요한 열량을 얻기 위해 밥을 많이 먹었다. 조선인은 대식가라고 서양인은 말하고 있다.

19세기에는 토지 소유세를 걷는 제도인 전정과 군대를 가지 않는 대신에 납부하는 군포를  징수하는 군정, 지방관아의 비리가 크게 증가하였다. 거창가(우)는 거창 지역 삼정의 폐단을 폭로하는 거창가에는 백성의 곤궁한 삶이 반영되어 있다. 조선 후기 사회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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