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돈의문과 경희궁지

 돈의문(敦義門)과 경희궁지(慶熙宮址)

조선시대 사대문(四大門)

서울의 옛 조선시대 때 한양에는 동서남북으로 4 대문이 있었다. 4 대문 중 서쪽에 있었던 서대문인 돈의문이 있었다. 돈의문 안에 들어서면 바로 조선의 5대 궁궐인 경희궁이 자리하고 있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돈의문과 경희궁지에 대해 알아본다.


경기도감염
경기감영도
돈의문 현판은 국립 고궁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경기감영도 그림에는 지워져 있는 돈의문 현판의 실제 모습이다. 현판 뒷면에는 1711년 11월 15일 유학 조덕연이 1749년 2월 18일 영건소 에서 고쳐 만들었다고 새겨져 있다.

사라진 돈의문
사라진 돈의문(敦義門) 철거전, 후 모습

1907년 고종 임금이 강제 퇴위된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한양도성을 철거시키기 위한 한양도성 성벽 없애기 위한 성벽 철거 위원회가 설치되었다. 도성안팍을 왕래하는 교통이 번잡하다는 것이 이유였지만, 이것은 표면상의 이유엿을을 뿐, 일본 태자의 방문을 앞두고 경비, 위생상의 이유로 안전을 위한 목적이 있었다. 성벽 처리 위원회는 1908년까지 숭례문(남대문), 흥인지문(동대문), 돈의문(서대문)과 소의문 주변을 철거시켜 해산시키고, 남은 업무는 내부 지방국과 토목국에 이관시켰다.

역사속 돈의문
역사속의 돈의문

1910년 일제는 강점과 더불어 수도 한성부를 경기도청 산하에 경성부로 개칭하여 일개 지방도시로 격하시켰다. 1914년 행정정 구역 개편 당시 용산 일대를 경성
부에 편입시키면서, 도시의 경계를 표시하는 성벽과 성문이의 기능이 사실상 사리 졌다. 이는 조선의 수도를 말살시키려는 의도 하에 계획된 수순이었다. 

이어 소의문 , 1915년에는 돈의문을 헐어 없애고, 목재는 푼돈 205원(당시 쌀 17 가마)에 경매로 팔아 버렸다. 숭례문과 흥인지문은 보존하면서  돈의문만을 헐어 없애버린 것은 임진왜란 당시 왜장들이 이 두 문(門)으로 입성한 이유도 있었지만, 러일 전쟁 이후 의주로 연결되는 돈의문 밖의 교통량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 이기도 했다.

사라진 전차
역사속으로 사라진 전차 381호

위 전차는 1930년경부터~ 1968년 11월까지 운행한 전차로 등록문화재 467호 지정되었다. 2007년 서울 역사박물관 앞으로 옮겨와 1년간 보존처리를 거쳐 전시하고 있다.

쇠 당나귀로 부르던 전차는 1898년 고종은 한성전기회사를 건립하고, 미국인 기업에 맡겨 이듬해 5월 완공하였다. 처음에는 청량리에서~ 돈의문까지만 운행하였으나, 1901년에는 남대문에 용산, 돈의문에서 마포 노선이 추가되었다. 당시에는 남대문, 동대문을 통과하였는데, 이로 인해 파루와 인정에 맞춰 성문을 엳는것은 폐지되었다. 

전차 부설 직후에는 전차로 인해 날이 가물다. 라거나 전차가 상여를 닮아 블깅하다는 등 흉한 괴소문이 나돌고, 급기야는 어린아이가 전차에 치여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나자 격분한 백성 들은 전차를 불태워 버리는 일도 일어았다.

전차로 인해 당시 조선사회에 금기시되었던 남녀 칠세 부동석 도 사라지게 되었다. 승객들은 신분에 의한 승차가 아닌 운임에 따라 상등 칸, 하등 칸으로 나뉘어 승차하였다. 당시 마포에서 돈의문을 통과 수도권으로 들어가는 노선이 생기자 점차 상업이 활발하게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경희궁 서궐도
경희궁(慶熙宮) 서궐도
일제에 의해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경희궁 


경희궁 궁장
경희궁 궁장(담장)
새문안 마을 박물관에서 별도 전시하고 있다.

경희궁 궁장은 경복궁 중건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대부분의 궁장과 전각들은 파괴되고 사라져 갔다. 경희궁 궁장은 전체 길이 1.8km로 추정되며, 이중 현재 남아있는 구간은 경희궁 북서쪽 지역으로 종로구 내수동에 위치한다. 길이는 약 200m, 높이는 3m 내외이다. 

경희궁의 위치를 찾는 일은 경희궁의 고증 및 복원의 중요한 시작이다. 경희궁 남쪽 구역에서 실제로 유규가 발견되었다. 이 발굴을 통해 경희궁과 주변 새문안 마을과의 경계를 부분적으로 확인되었다. 

경희궁 장장 앞쪽으로는 조선시대 온돌과 일보 강점기 건물지도 함께 보인다, 당시 건물의 온전한 모습은 확인 할 수는 없으나, 조선시대에서 일제 강점기로 넘어가는 동안 중첩된 건물지를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는 있다.


복원해 놓은 경희궁
복원된 경희궁

사적 제271호로 지정되어 있는, 경희궁지 는 조선시대 5 대 궁궐로 꼽리는 궁궐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 조선 총독부로 소유권이 넘어가면서 철저히 파괴되어 궁으로의 모습을 잃었다. 근대에 들어외 복원은 시켜 놓았으나, 이는 몇몇 전각들 많이 복권되었을 뿐 옛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고 한다. 

오늘은 조선시대 사대문 안에 있던 돈화문과 그 일대 경희궁지에 대해 알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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