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서화 작품

서화 작품 감상

조선시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조선시대 서화가의 솜씨를 들여다본다.

서화 전시 관람

조선시대 서화(書畵) 서화의 글자를 하나씩 떼어 읽으면 글씨와 그림일 뿐이지만 붙여 놓으면, 먹 향기 그윽한 낱말이 된다. 상고시대 사람들이 그림 같은 갑골문으로 하늘의 뜻을 점친 이후 동아시아에서 글씨와 그림은 늘 짝을 이루어 왔다. 서화 감상은 즐겁다. 종이와 비단 위를 쓸고 간 붓의 흔적을 다듬어 보아도 좋고, 솜씨 부린 사색의 멋을 보아도 좋다.


무이구곡가
17세기 윤순거가 쓴 무이구곡가(보물 1671호)

무이구곡 가는 중국 남송의 성리학자 주희가 무이산 아홉 굽이 계곡을 무릉도원으로 극찬하며 지은 시로 우리나라 문인들이 애송했다. 이 글씨는 윤순 거(자는 노직)의 대표적인 초서 작품으로, 넉넉한 짜임과 재빠른 붓질을 느낄 수 있다.

 

 

윤순거는 황기로와 양사언의 초서풍을 잇는 17세기를 대표하는 서예가로 평가받는다. 그이 서풍은 17세기 큰 글씨 초서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으며, 이후 18세기 초서 서충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하응의 행서대련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행서대련

흥선대원군 이하응(호: 석파)은 조선 말기 정치가이자 뛰어난 서화가였다. 추사 김정희의 지도 아래 다양한 서체에 능통하였으며, 당대 최고의 묵란 화가로 이름을 날렸다. 이 대련은 중국 당나라 문인 원진과 이필의 명성을 찬탄하는 내용을 단정한 행서체로 쓴 것이다. 활달하면서도 격조 이쑈는 서체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궁중에서 시 짓기로 이름난 사람은 원진이요
천하에서 신선으로 이름난 사람은 업후 이필이다.
석파 늙은이
 

눈속의 매화
조선 17세기 오달제의 눈 속의 매화

오달제는 병자호란 때 마지막까지 화친을 반대한 결과 청나라 심양으로 압송되어 처형당한 삼학사의 한 사람이다. 그는 문인으로 활동한 29세의 짧은 생애 동안 절개를 상징하는 매화 그림ㅇ늘 몇점 남기었다. 이 작품은 눈 속에서 꽃을 피워낸 설중매를 그린 것으로, 짙은 먹으로 줄기 아래쪽을 그리고 눈 쌓인 부분은 희게 남겨 입체감을 나타내었다. 사선으로 뻗어오른 가지가 앞뒤로 겹치는 모습은 입체적 공간감을 느끼게 한다. 족자 뒤쪽에는 오달제의 11대손 오중환이 조상의 절대를 사모하는 글이 적혀있다.

후손의 글
족자 뒷면의 후손 오중환의 글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 현자와 불초자를 막론하고 모두가 매화를 사랑한다. 하지만 11대조 충렬공께서 설매를 사랑하신 것은 눈의 결백과 청정한 절개를 취하신 것이다. 순절하실 당시 아, 저들 호랑이와 여우 같은 마음이 매우 가혹하여 기름 달군 솥에 몸을 삶고, 철형에 발을 딛게 하고 칼로 살을 도려내는 지경에 이르러서도 끝내 굽히지 않고 절의를 지키셨으니 아, 애통하다. 어ㅣ 장렬하지 않은가!

청정한 평소의 절의를 나타내신 것이기도 하다. 불초 후손이 이것을 보고 감격해 눈물을 올리고 사모하며, 천박한 식견도 생각하지 않고 감히 몇 마디를 적는다. 경오년 오추(7월) 하순에 11대 불초 손 삼가 적다. 

나귀타고 떠나다
조선 17세기 김명국의 눈 속에 나귀 타고 떠나다.

김명국(자는 천여, 호는 연담)은 17세기 도화서를 대표하는 화원으로 호방한 필치로 이름이 높다. 광태파 라고도 불리는 중국 명나라 후기 절파의 표현주의 적 수법을 받아들여 거침없이 개성을 표출하였다. 이 그림도 무너질 듯 기울어진 절벽, 날카롭게 꺾이는 짙은 먹선에서 광태파의 수법이 잘 나타난다. 

한 선비가 나귀를 타고 다리를 건너면서 사립문에서 배웅하는 동자와 시선을 주고받고 있는 모습을 보이는 작품이다. 중앙박물관에 열리는, 조선 후기 서화전의 서화를 감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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