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궁궐 아름다운 풍경

 조선시대 5대 궁궐


조선의 수도 한양 5대 궁궐 여행


조선의법궁-경복궁

조선의 법궁 경복궁(景福宮) 사적 117호
조선의 정궁으로 정연한 배치를 갖춘 궁궐로 북궐이라고도 하며, 태조 이성계가 한양을 도읍으로 정하면서 세운 궁궐, '시경'의 왕조의 큰 복을 빈다 는 의미를 따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조선3대임금-태종이-창건한-창덕궁
창덕궁(昌德宮) 사적 제122호
조선 3대 임금인 태종이 1405년 창건한 제2궁궐로, 수도 한양의 서쪽에는 경복궁, 동쪽에는 창덕궁이 위치하여 균형 잡힌 도시공간을 구성하였다. 동쪽의 창경궁과 함께 하나의 궁궐로 사용되어 동궐(東闕)이란 별칭을 가지고 있다.

옛-경운궁이었던-덕수궁
덕수궁(德壽宮), 경운궁(慶運宮) 사적 제124호
500여 년 전, 조선 성종 임금이 그의 형 월산 대군(1454~1488)에게 살림집으로 지어 준것으로, 임진왜란 이후 선조의 임시 거처하는 행궁으로 사용하다, 광해군이 1611년에 재건한 창덕궁으로 어가를 옮기면서 별궁인 경운궁이 되었다.  1907년에 선황제의 거처가 되면서 궁의 이름을 덕수궁으로 바꾸었다.


태종의-수강궁이었던-창경궁
창경궁(昌慶宮)  사적 제123호
본래 세종이 상왕으로 물러난 태종의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 지은 수강궁(壽康宮)으로, 1483년에 성종이 3명의 대비를 위해 이 터에 크게 궁궐을 짓고, 창경궁이라 불렀다.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된 것을 1616년 다시 세웠다. 1624년 이괄의 난으로 소실된 많은 전각들이 1633년에 중건되었다. 

 

 

1909년 일제는 궁 안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들고, 1911년에는 박물관을 짓고 창경원으로 격을 낮추어 불렀다. 1984년 일제가 철거했던 문정전과 월랑 등을 복원 정비하면서 다시 이름을 창경궁으로 환원했다.


일제에의해-사라졌으나-새로-복원한-경희궁
경희궁지(慶熙宮址) 사적 제271호
경희궁은 일제가 매몰시켰지만, 발굴과 고증을 거쳐 경희궁내 각 전각을 복원하는 사업을 진행, 1987년에는 흥화문을, 1991년에는 숭전전을, 자정전과 회랑은 1998년에, 태령전과 그 일곽은 2000년에 각각 경희궁내에 복원하였다.

다만 흥화문은 원 위치에 구세군회관이 위치한 관계로 원위치에 옮길 수가 없어 서쪽으로 100여 m 이동하여 복원하였으며, 지금의 경희궁은 몇몇 전각들이 복원되기는 하였으나. 대분분의 전각들은 사라지고 궁궐터도 많이 축소되어 예전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조선의 궁궐 풍경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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