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비봉 순수비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


영토를 넓히고 세운 순수비

국보제3호

신라 진흥왕은 불교의 이상적인 왕인 전륜선왕 이 되길 원했다. 진흥왕은 불과 수년 만에 한반도의 중부지역까지 영토를 넓혀 위업을 이루었다. 여기에는 스스로 미륵의 화신이 되고자 한 젊은 화랑들의 헌신적인 희생도 한몫을 하였다.

568년 진흥왕은 태왕을 자부하며 변경까지 수레를 몰아서 나라 안을 살피는 순수의 길에 올랐다. 북한산을 거쳐 8월에는 함경남도 함흥에 있는 황초령에 닿았다. 이때 진흥왕은 비문을 남겨 자신의 업적을 후세에 널리 알리고자 하였다.


북한산-진흥왕-순수비-진품
진흥왕 순수비
국보 제3호
삼국시대(신라) 진흥왕 16년(서기555년)
서울 북한산 비봉 
국립 중앙박물관 전시중

북한산-진흥왕-순수비-양쪽-측면모습
진흥왕 순수비 측면

 

 

북한산-진흥왕-순수비-비문내용
진흥왕 순수비의 비문
비문에는 진흥왕의 영토확장과 순수의 목적, 순수에 참여한 인물들을 기록하고 있다.

북한한-비봉-꼭데기에-세워진-순수비

진흥왕 순수비(비문 뒤 배경은 북한산 비봉)

진흥왕이 한강유역을 차지한 후 이 지역을 둘러본 것을 기념하기 위한 비석이다. 

이 비는 원래 북한산 비봉에 서 있었으나 현재는 국보 제3호로 지정되어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국립 중앙박물관으로 옮겨져 여기에 진시 되고 있다. 비(碑)가 세워져 있던 북한산 비봉의 정상에 세워져 있는 것은 진품을 본뜬 모조품이고 진품은 중앙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이 비(碑)는 1816년 추사 김정희 선생이 비봉에 올라 조사한 결과 진흥왕 순수비로 판명되었다. 이후에도 비봉에 올라 재조사하였는데, 옆면에도 그런 사실이 필치로 새겨져 있다.

댓글